우리의 전통과자 ‘한과’
우리의 전통과자 ‘한과’
by 마이빌평택 2018.02.01
[음식이야기]
한과(漢菓)라는 명칭은 서양의 과자와 구별해 쓰는 말로 전통 과자를 의미한다. 요즘이야 흔히 과자를 사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에 과자는 잔치나 제사 상에나 올라가는 귀한 것이었다.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던 한과는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명절이나 제사 때 반짝 판매되는 전통식품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제사상에 반드시 올라가는 ‘약과’
약과는 지금은 흔히 볼 수 있으나 1948년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는 ‘약과는 조선에서 만드는 과자 가운데 가장 상품이며 온 정성을 들여 만드는 점에서 세계에 그 짝이 없을 만큼 특색 있는 과자’라고 했다.
약과는 ‘약 약’(藥) 자에 ‘과일 과’(果) 자를 쓴다. 즉 ‘약이 되는 과일’이라는 뜻이다. 정약용은 <아언각비>에 꿀을 약으로 쳤기 때문에 약(藥)자가 붙었다고 밝히고 있다. 꿀과 찹쌀을 버무려 만든 밥을 약밥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밀가루에 꿀을 버무려 만들기 때문에 약과다. 그렇다면 밀가루에 꿀을 버무려 튀긴 과자를 어째서 과일로 취급하는 걸까.
정약용은 과자는 과일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과일을 쉽게 구하기 어려운 계절에 과일 모양으로 과자를 빚어 잔치나 제사상에 올리다가 그릇에 쌓아놓기 쉽도록 지금처럼 납작한 모양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제사상에 과일과 같은 줄에 올리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과자를 일종의 인공 과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잔칫상도 마찬가지지만 제사상에는 반드시 약과를 놓는다. 이는 중국 전국시대 노래인 ‘초혼부(招魂賦)’에 나오는 신하가 죽은 임금을 그리워하며 ‘거여’와 ‘밀이’를 차려놓고 돌아오라 했다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이 음식들이 밀가루로 만든 떡에 엿과 꿀을 바른 음식이라 하여 약과의 원형으로 봤다.
또한 불교문화에서도 약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고려사>에는 의종 때 팔관회와 연등행사 때 약과가 놓여 있지 않아 큰일이 났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육식을 금지하는 불교의 교리로 인해 제사를 지낼 때 고기와 생선을 과일과 곡식으로 대신하면서 약과를 중요한 제례 음식으로 여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려 명종(1192)과 공민왕(1353) 때는 약과가 널리 유행하여 밀가루와 꿀의 소비가 많아지자 약과를 비롯한 유밀과 제작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정성이 가득 ‘강정·산자’
누에고치 모양의 강정과 납작하고 네모진 산자는 모두 강정이라는 큰 범주에 속하는 과자다.
강정은 찹쌀가루에 술을 넣어 반죽한 다음 썰고 말려서 기름에 튀긴다. 여기에 조청이나 꿀을 바르고 다양한 고물을 묻혀 만든다. 고물 종류에 따라 콩강정·쌀강정·송화강정 등이 있다. 속이 비어 있고 맛은 강하지 않은 편이다.
산자는 강정과 만드는 법이 비슷하지만 반죽을 한 번 쪄낸 뒤 공기가 들어가도록 쳐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 네모모양으로 편편하게 만들고 고물로 쌀 튀밥을 붙이는 점이 다르다.
강정은 고려시대에 흥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이르면 양반뿐 아니라 백성도 제사와 잔칫상에 올릴 정도로 널리 유행한다. 이 과자들은 손이 많이 가는 데다 귀한 꿀과 밀가루를 소비하기 때문에 고려 때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도 금지령이 내려진다.
정조 때 <대전회통>에는 ‘민간인이 혼인·제사 이외에 조과를 사용하면 곤장을 맞도록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실제 처벌을 받았다는 사람의 기록은 없지만 그만큼 강정을 사치품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와 <동국세시기>에는 각각 ‘인가(人家)에서는 조상에게 제사 지낼 때 올리는 음식으로 강정을 으뜸으로 삼았다’, ‘오색 강정은 제사 지내는 데 있어서나 손님을 접대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라는 말이 기록돼 있다.
마이빌평택 김주란 기자
제사상에 반드시 올라가는 ‘약과’
약과는 지금은 흔히 볼 수 있으나 1948년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는 ‘약과는 조선에서 만드는 과자 가운데 가장 상품이며 온 정성을 들여 만드는 점에서 세계에 그 짝이 없을 만큼 특색 있는 과자’라고 했다.
약과는 ‘약 약’(藥) 자에 ‘과일 과’(果) 자를 쓴다. 즉 ‘약이 되는 과일’이라는 뜻이다. 정약용은 <아언각비>에 꿀을 약으로 쳤기 때문에 약(藥)자가 붙었다고 밝히고 있다. 꿀과 찹쌀을 버무려 만든 밥을 약밥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밀가루에 꿀을 버무려 만들기 때문에 약과다. 그렇다면 밀가루에 꿀을 버무려 튀긴 과자를 어째서 과일로 취급하는 걸까.
정약용은 과자는 과일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과일을 쉽게 구하기 어려운 계절에 과일 모양으로 과자를 빚어 잔치나 제사상에 올리다가 그릇에 쌓아놓기 쉽도록 지금처럼 납작한 모양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제사상에 과일과 같은 줄에 올리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과자를 일종의 인공 과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잔칫상도 마찬가지지만 제사상에는 반드시 약과를 놓는다. 이는 중국 전국시대 노래인 ‘초혼부(招魂賦)’에 나오는 신하가 죽은 임금을 그리워하며 ‘거여’와 ‘밀이’를 차려놓고 돌아오라 했다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이 음식들이 밀가루로 만든 떡에 엿과 꿀을 바른 음식이라 하여 약과의 원형으로 봤다.
또한 불교문화에서도 약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고려사>에는 의종 때 팔관회와 연등행사 때 약과가 놓여 있지 않아 큰일이 났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육식을 금지하는 불교의 교리로 인해 제사를 지낼 때 고기와 생선을 과일과 곡식으로 대신하면서 약과를 중요한 제례 음식으로 여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려 명종(1192)과 공민왕(1353) 때는 약과가 널리 유행하여 밀가루와 꿀의 소비가 많아지자 약과를 비롯한 유밀과 제작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정성이 가득 ‘강정·산자’
누에고치 모양의 강정과 납작하고 네모진 산자는 모두 강정이라는 큰 범주에 속하는 과자다.
강정은 찹쌀가루에 술을 넣어 반죽한 다음 썰고 말려서 기름에 튀긴다. 여기에 조청이나 꿀을 바르고 다양한 고물을 묻혀 만든다. 고물 종류에 따라 콩강정·쌀강정·송화강정 등이 있다. 속이 비어 있고 맛은 강하지 않은 편이다.
산자는 강정과 만드는 법이 비슷하지만 반죽을 한 번 쪄낸 뒤 공기가 들어가도록 쳐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 네모모양으로 편편하게 만들고 고물로 쌀 튀밥을 붙이는 점이 다르다.
강정은 고려시대에 흥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이르면 양반뿐 아니라 백성도 제사와 잔칫상에 올릴 정도로 널리 유행한다. 이 과자들은 손이 많이 가는 데다 귀한 꿀과 밀가루를 소비하기 때문에 고려 때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도 금지령이 내려진다.
정조 때 <대전회통>에는 ‘민간인이 혼인·제사 이외에 조과를 사용하면 곤장을 맞도록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실제 처벌을 받았다는 사람의 기록은 없지만 그만큼 강정을 사치품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와 <동국세시기>에는 각각 ‘인가(人家)에서는 조상에게 제사 지낼 때 올리는 음식으로 강정을 으뜸으로 삼았다’, ‘오색 강정은 제사 지내는 데 있어서나 손님을 접대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라는 말이 기록돼 있다.
마이빌평택 김주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