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 와인이야기

오랜 역사를 가진 ‘헝가리 와인’

오랜 역사를 가진 ‘헝가리 와인’

by 마이빌평택 2016.09.24

[와인이야기] 오랜 역사를 가진 ‘헝가리 와인’
유럽의 와인 산지를 열거할 때 바로 떠오르지 않지만 아주 오랜 와인 생산 역사를 가진 나라가 바로 헝가리다. 세계 10대 와인 생산국이면서 발칸반도 화산 지류가 헝가리 땅에도 흐르고 있어 이곳의 포도 맛은 특별하다.

중앙 유럽에 위치한 헝가리는 기원전에 포도밭 유적지가 나올 정도로 오랫동안 포도를 경작하고 와인을 생산해 왔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이슬람 세력이나 오스트리아 등 외세의 침략을 받은 데다 현대까지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고립되어 바깥세계에 와인 산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근에야 체계적인 와인 생산체제를 갖추며 헝가리 와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헝가리 대표와인 ‘토카이 아수’
헝가리 와인 하면 바로 연상되는 것이 ‘토카이 아수(Tokaji Aszu)’다. 원래 토카이(영어로는 Tokay)는 헝가리 북부의 자그마한 마을 이름이고, 아수란 ‘귀부병(貴腐病)에 영향을 받은 포도’를 의미한다.
페니실린처럼 유익한 곰팡이가 있듯이 와인에도 곰팡이가 유익한 역할을 할 때가 있다. 바로 ‘귀부병(Noble Rot)’이라고 부르는 곰팡이로, 최고급 스위트 와인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곰팡이는 일교차가 심한 늦가을에 강 근처의 포도밭에서만 생성된다. 일교차로 인해 한밤중이나 새벽, 차고 습한 공기로 강에서 물안개가 피어올라 포도밭 전체에 퍼지면서 귀부병은 포도밭 포도송이 표면에 내려앉게 된다.

아침에 햇살이 비치고 낮에 온도가 올라가면서 포도밭의 습기를 걷어내면 밤새 포도송이 위로 퍼지던 귀부병은 포도 껍질 안으로 스며들어 포도알의 수분을 50% 이상 증발시켜 당도가 올라갈 뿐 아니라 여러 가지 화학변화가 생겨 다른 포도들이 갖고 있지 않은 독특한 향과 맛이 복합적으로 형성된다.

‘와인 중의 왕’이라 불려
‘토카이 아수’는 오랜 시간에 걸친 오크통 숙성으로 진한 호박색(앰버)을 띤다. 맛이나 향도 색깔처럼 우리나라의 호박엿을 연상시키며 오렌지 껍질, 말린 살구, 무화과, 계피 향에 견과류나 커피, 캐러멜 향 등 다양한 풍미를 낸다. 당도가 높지만 산미가 워낙 강해서 들척지근한 느낌 없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토카이 와인은 프루민트(Furmint)와 하르슐레벨뤼(Harslevelu)와 같은 헝가리 토착 청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지며 레이블에는 ‘푸토뇨시(Puttonyos)’라는 헝가리만의 등급 제도를 붙여서 술의 숙성과 질을 표시한다. 레이블에 6푸토뇨시라고 표시돼 있으면 8년 간 숙성된 최상급의 당도 높은 와인이라고 평가한다.

주로 디저트 와인으로 사용되며, 호두 파이나 오렌지와 같은 감귤류가 들어간 타르트 등과 아주 잘 어울린다. 3푸토뇨시는 5년 정도 숙성된 것으로 오프 드라이, 즉 살짝 스위트하기 때문에 식전 주나 그냥 음식 없이 가볍게 마시기에도 적당하다.

이 와인은 라틴어로 ‘Vinum Regum Rex Rinum’이라고 하는데 이는 ‘왕들의 와인, 와인 중의 왕’이라는 뜻이다. 이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퐁파두르 마담에게 와인을 권하면서 “이 술은 포도주의 왕이며, 왕의 포도주이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 독일의 시인 괴테 등 여러 나라의 왕후나 문인, 음악가가 사랑했던 술이기도 하다.

에게르 성을 지킨 ‘에그리 비카베르’
헝가리는 화이트 와인이 유명하지만 레드 와인도 인상적이다. 15세기 초까지 에게르 지방은 화이트 와인만을 재배했으나 터키의 지배를 피해 건너 온 발칸반도의 유랑민족에 의해 처음으로 레드 와인과 그 재배기술이 들어왔다.

16세기에는 재배가 활성화 되어 여러 품종이 개발되었다. 그중에서도 으뜸이 ‘에그리 비카베르(Egri Bikaver)’ 또는 영어로 ‘불스 블러드(Bull’s Bood of Eger, 에게르의 황소 피)’라고 불리는 레드 와인이다.

전설에 따르면 터키군이 헝가리를 침공해 에게르 성을 포위한 적이 있다. 이때 성 안에 있던 부녀자들이 성을 지키는 군인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계속해서 와인을 공급해 주었다.

이 격려 덕분에 헝가리 군인들의 수가 적은 아주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용맹하게 잘 싸워 적군을 물리치고 성을 지켰다. 패배해 물러가던 터키군은 에게르 성 사람들이 마신 음료가 황소의 피라고 여겼고, 그것을 마시고 군인들이 용맹해지고 강해졌다고 믿었다는 데서 이 와인의 이름이 유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