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 음식이야기

향수를 자극하는 ‘수제비’

향수를 자극하는 ‘수제비’

by 마이빌평택 2016.11.11

[음식이야기]

찬바람 때문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요즘, 뜨끈한 수제비 한 그릇이 그립다. 수제비는 향수를 자극하는 음식이다. 애호박이나 김치를 썰어 넣고 끓인 수제비를 먹으면 고향집과 어머니 손맛이 떠오른다.

조선 시대 복날 음식으로 먹어
수제비 하면 많은 사람이 ‘옛날 못살았던 시절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6·25전쟁 때 구호물자로 들어온 밀가루에서 비롯된 음식으로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유래를 알면 수제비에는 의외의 사실이 많이 담겨 있다.

수제비는 역사가 오래된 음식이다. 수제비라는 음식 이름은 최소 조선 중기 이전부터 있었다. 조선 중종 12년인 1517년에 발행된 <사성통해(四聲通解)>라는 중국어 통역서에 수제비라는 단어가 수록돼 있다. 조선 시대에는 수제비가 복날 음식으로 손꼽혔고 유두(음력 6월 15일)에도 액을 쫓는 의미로 밀국수를 먹었다고 한다.

6·25전쟁 때부터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아
수제비는 만드는 재료와 방법에 따라 잔치국수처럼 양반집 잔칫상에도 놓였다. 잔칫상에 올랐다는 수제비는 밀가루가 귀했던 시절이므로 밀가루로 만든 것보다는 쌀가루로 많이 만들었다. 지금 쌀로 수제비를 끓인다고 하면 낯설게 느껴지지만 예전에는 시골에서 추수가 끝나 곡식이 풍부할 때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수제비를 했다.

추수가 끝난 후 쌀은 있지만 밀가루는 없고, 또 밀가루 살 현금도 없으니 쌀가루로 수제비를 끓여 별식으로 먹었다. 쌀이나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 장국에 넣으면 둥둥 떠서 끓는 것이 마치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것 같다고 해서 수제비를 발어(撥魚)라고도 불렀다.

향토색 짙은 이름도 여럿 있다. 지역에 따라 뜨데기·뜨덕국(경기·강원), 떠넌죽(전남), 던지기탕(울산), 수지비·밀제비(경남) 등으로 불린다. 북한에서는 ‘뜨적제비’라는 말을 표준말로 쓴다.

수제비가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시기는 6·25전쟁 때부터로 본다. 전쟁 이후 다량의 밀가루가 구호물자로 유입되면서 사람들이 수제비를 많이 해 먹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중국에도 비슷한 음식 있어
일본에도 수제비가 있다. 스이동(すいとん)이라고 하는데 얼핏 보기에 우리나라의 수제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일본 수제비 역시 역사가 짧지 않아서 17세기 ‘요리물어(料理物語)’와 19세기 ‘수정만고(守貞만稿)’를 비롯한 다양한 문헌에 수제비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칡가루에서부터 메밀가루, 밀가루까지 다양한 재료로 끓였지만 일본 상류층이 보는 요리책에 수록된 것을 감안하면 일본에서도 수제비를 고급 음식으로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는 수제비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도삭면(刀削麵)이다. 수제비 같기도 하고 칼국수 같기도 한 음식인데 베개 크기로 반죽한 밀가루 덩어리를 어깨에 메고 한 손에 든 칼로 감자 껍질 벗기듯 쳐내면 밀반죽이 끓는 물속으로 떨어져 국수가 된다.

마이빌평택 김주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