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 커피이야기

살다보면

살다보면

by 마이빌평택 2016.11.14

[이평기의 커피이야기]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다. 버선 속 같으면 뒤집어 속을 보여주기라도 할텐데, 사람 가슴속 이야기는 믿게 만들기도 어렵고 믿으려 들지도 않는다. 보이는 대로 보는 것도 아니고, 본 것을 상상해서 터무니없이 부풀리고, 선의는 일부러 없애버리고, 흠은 키워서 생채기를 만든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기 싫어하는 배배꼬인 심성이 사람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다.

조선 선조 때 매창(梅窓, 1573~1610)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기생(妓生)이다. 노래도 잘하고 거문고도 잘 타고 시재(詩才)도 뛰어나 황진이와 비교되기도 한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매창의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 하는가 /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는 시가 널리 알려졌지만 나는 이 시를 더 좋아한다.

잘못은 없다지만 뜬소문 도니
여러 사람 입들이 무섭기만 해라
시름과 한스러움 날로 그지없으니
병난 김에 차라리 사립문 닫아걸어 두리라

매창은 당대의 많은 문사와 교류했다. 이귀, 허균, 유희경 등. 많은 사내가 그녀를 좋아했을 것 같다. 빼어난 미모는 아니라고 허균이 평하지만, 사람의 호불호가 어디 얼굴에서만 나오겠는가. 아무튼 문사들과 교류하다 보니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사랑을 얻지 못해 질투심에 불타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천민출신 시인인 유희경과 사랑에 빠졌다하니, 사랑을 얻지 못한 양반 문사들의 상처도 컸을 듯하다. 그러니 뜬소문도 많았을 것이고 헛소문도 많았으리라. 매창을 평하는 글 중에 ‘천성이 고결하고 음탕함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평도 있다. 그렇다면 무수한 소문이 그녀에겐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마음을 다스릴 일은 많다. 옛 사람들은 차(茶)를 마시면서 마음도 다스리고 생각도 정리했을 것이다. 지금은 마실 음료는 많지만 깊은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며 먹을 만한 음료는 별로 없는 듯하다. 나는 가끔 마음이 편치 않을 땐 진한 에스프레소를 내려 먹는다. 그 쓴맛과 커피의 진한 향이 목 너머까지 남는 에스프레소가 신산(辛酸)한 마음을 달래 주기도 한다.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으로는 그 맛을 얻기 어렵다. 커피숍의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에스프레소를 한 잔 받아들고 분위기 좋은 창가에 앉아 그 진한 맛을 즐기면 어느덧 세상사의 소음이 조용히 가라앉을 것이다. 물론 커피가 제대로 맛있어야 하지만. 그래서 좋은 커피숍을 근처에 두고 사는 것도 복이다. 오늘은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영혼을 말끔히 씻어 볼까.
▣이평기 칼럼니스트

- 평택 넓은 벌 한가운데, 전원카페 '러디빈지금'에서 커피, 강아지들과 함께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는 사내.
- 전원카페 ‘러디빈 지금’ 대표 (평택시 오성면 창내리 47-26), C.P : 010-9279-5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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