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 茶이야기

측천무후의 사랑 받은 ‘신양모첨’

측천무후의 사랑 받은 ‘신양모첨’

by 마이빌평택 2018.08.13

[茶 이야기 ]
다경(茶經)을 편찬해 차의 성인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당나라 육우(陸羽)와 송나라의 대문호인 소동파(蘇東坡)도 신양모첨(信陽毛尖)을 녹차 중 최고라 칭송했다.

이런 신양모첨의 산지는 중국 허난(河南)성 남쪽에 위치한 신양(信陽)이다. 신양은 다섯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차운산(車雲山)을 비롯해 산 이름에 구름 운(구름)자가 모두 들어 있을 정도로 구름과 안개가 많아 차 재배에 적합한 곳이다.

신양모첨으로 기력 회복한 측천무후
신양모첨의 명성을 말할 때 측천무후와의 이야기를 놓을 수 없다. 측천무후는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 황제로 칭해진다.

측천무후는 공자(孔子)가 이상향으로 삼았던 고대의 주(周)나라를 표방한 대주(大周)를 690년 창업해 주나라 황제로 16년간 통치했지만 당나라 고종의 황후(皇后) 시절 29년과 황태후(皇太后) 6년을 더하면 50여 년간 실질적으로 당대의 중국을 장기 집권한 권력자였다. 실권을 잃고 노쇠한 이후에도 복원된 당나라 중종의 태상황(太上皇)이 돼 죽을 때까지 위세를 떨쳤다.

평생을 치열한 권력다툼의 한 가운데서 살았던 측천무후는 황태후로서 황제를 마음대로 갈아치우며 전횡을 일삼았지만 한편으로는 늘 권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권력을 위해서 친아들을 죽일 정도로 무자비했던 측천무후. 이런 가운데 공포정치로 중신들도 떨었지만 측천무후도 늘 깨어있어야 했다.

심리적 압박과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측천무후를 구한 것은 차였다. 정신이 혼미해져 병석에 누운 측천무후는 황실어의가 처방한 갖은 약재를 써봤지만 병세가 나아지지 않았다.

때마침 황실공차로 올라온 신양모첨을 마신 측천무후는 머리가 맑아지며 병석에서 일어났다. 기력을 회복한 측천무후는 신양모첨의 생산지인 차운산 일대를 황가다원(皇家茶園)으로 지정하고 감사의 표시로 천불탑(千佛塔)을 세우게 했다.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
측천무후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지만 측천무후가 총애한 신양모첨은 ‘중국 10대 명차’에 이름을 올리며 오늘까지 중국 녹차의 왕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런 역사성을 지닌 신양모첨은 중국의 모든 명차가 그러하듯이 신선의 도움으로 차나무 씨앗을 물고 왔다는 화미조(畵眉鳥)의 전설을 품고 있다. 실제 2000년의 제조 역사를 가진 명차다.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세 종류로 나누는데 곡우 무렵의 춘차, 만종의 하차, 입추의 추차로 일 년에 세 번 차를 수확한다. 외형도 신비하다.

신양모첨의 찻잎은 가늘고 단단하며 바늘 끝 모양을 하고 있다. 이처럼 차 잎의 끝이 뾰족한 바늘 끝 모양(첨)을 하고 있어 모첨차라고 불리는 것이다. 차 잎의 겉에 하얀 솜털 같은 은백색 털이 나 있어 외형도 신비롭다.

녹차 중에서도 해열작용 및 혈압상승을 억제하며 집중력 향상과 노화방지, 피부톤 유지 및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차로 알려졌다. 특히 피로 회복과 면역력 강화에 많은 도움이 된다. 1915년 파나마 만국박람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오래도록 입안에 감도는 향기
차는 미리 예열한 다구에 물의 온도를 85도 정도로 하여 우리면 된다. 다관에 찻잎을 넣고 물을 넣는 하투법이 아닌 물을 반 정도 넣은 후 찻잎을 넣고 다시 물을 넣어주는 중투법으로 우려주면 좋다.

흰솜털이 있는 찻잎을 우리면 상큼하고 달콤한 향이 주위에 퍼진다. 우린 차를 한모금 입에 물면 신선한 단맛과 그윽한 향이 오래도록 입안에 지속된다.

특히 보통 차의 맛이 입안에서 퍼져나가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맛이라면 이 차는 맛이 퍼지다가 다시 말려 들어와서 다시 수렴하는 신기한 맛을 낸다. 다만 이 차는 온도가 낮아지면 바로 쓴 맛이 나니 식기 않게 마시는 것이 좋다.

마이빌평택 이인재 기자